나점복을 처음 본건 2007년 대학 졸업반 때였다. 동아리방에 갔더니 엄청나게 껄렁대는 처음 보는 애가 있었는데 인사도 안하고… 그래서 전 뫄뫄 학번 누군데 님은 누구신지? 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나점복은 공학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는 나를 잘 따랐다. 나는 후배 나점복을 귀여워했다. 언젠가 그는 연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는 잘 들어주었다. 그 작은 모임 안에서 둘은 참 요란하게도 사귀었다… (나도 사귀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요란하진 않았다…) 나는 졸업했다. 나점복은 군대를 다녀와 복학했다. 나점복과는 연락을 종종 주고받으며 가끔 만나기도 했다. 나는 나점복을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계속 접근해 껄떡거렸다… 2011년 7월 나점복과 나는 사귀게 되었다. (예스!) 그리고 6년 후 결혼식을 올렸다.
나점복은 IT업계 개발자가 되었고 나는 출판업계 디자이너가 되었다. 근속한지 10년쯤 나는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었다. 업무량도 너무 많았는데, 조직 생활 스트레스까지 새로 생겼다… 나점복은 내가 퇴근 이후에도, 휴일에도, 집에서 괴로워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며 화를 냈다. 이게 뭐하는 거야? 회사에서 일 했는데 또 일 해? 계속 이러고 살거야? 그럼 회사 그만 둬도 됨? 했더니 야 그만둬 그만둬, 남편이 그만두라 했다고 해. 라고 했다. 나중에 다른 말을 하면 안 되니, 나는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적어. <차라리 백수로 살거라 -2023년 어느 봄날 나점복(인)>. 사직서에 남편이 그만두라고 했다고 쓰지는 않았다. 나점복은 퇴사하는 날 카니발을 빌려 산더미같은 짐을 같이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날 불편하게 하는 싫은 인간이 아니라면, 사람의 기척이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사람이 싫은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배우자와 함께 있는 것도 상당히 좋아한다… …나점복과는 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편이다. 나점복은 통근 시간이 긴 편이고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주로 재택 근무를 한다. 출근을 아예 안하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한다. (그런데 안 할 때도 있다) 2020년 코로나 시기부터 그렇게 되었는데, 방역 수칙이 강화된 이후부터는 나도 재택근무를 종종 하게 되며 점점 더 붙어있게 되었다. 집에 내내 같이 있으면서 일하는 것도 할만한데?
그럼에도 걱정을 안 했던 건 아니었다. 돈 걱정 경력 걱정에 앞서 가끔도 아니고 매일 죙일 내내 둘이 집에 같이 있는 것이 괜찮을까 하는 걱정. 일어나면 집에 나점복이 있다. 일하는 방에 들어가면 거기에도 나점복이 있다. 나점복도 일하고 나도 일한다. 당연히 밥도 같이 먹는다. 메뉴를 정해야 하는데 둘 다 솔깃한게 없을 때는 지지부진한 회의가 이어진다. 일이 끝나도 집이고 역시 나점복도 집에 있다. 가끔 늦은 시간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물론 일찍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건 감안해야 함) 그런데 이 녀석, 그냥 자기가 일 안하는 시간에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성질을 내는 거였다. 긴 시간을 계속해서 집중해서 뭔가 해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잘 이해 못하나 싶기도 하다가도 본인이 그럴 때 내가 귀찮게 하면 정말 싫어한다… 그냥 내가 뭘 생산하려고 몰두하는게 싫은건가…
제 배우자는 맨날 집에 있어요. 나점복은 가끔 출근한다. 그런 날은 고요하게 해야 할 일을 한다. 고양이들과 자느라 꾸부러진 몸은 항상 쥐가 나있거나 압통이 있다.. 일어나서 고양이들을 좀 만지다가 정성들여 스트레칭을 하고 밥을 해먹는다. 혼자 있을 때 배달음식을 시키는 건 내키지 않는다. 냉장고를 열어 훑어본다. 없는 재료로 대충 먹을만하게 조용히 밥을 차려 먹고 청소를 한다. 둘이 있으면 은근하게 서로 집안일을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커다란 사람 한 명이 집에 없으니 집이 아주 깨끗하게 유지된다. 일은 잘 되는 편이다. 나점복은 일하면서 영상이나 음악을 크게 틀어두는 습관이 있다. 나점복은 회사 갔다. 조용하다. 집중해서 일을 하거나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내 친구들은 나점복의 친구이기도 해서 나점복의 안부를 주고 받기도 한다... 오늘 점복이 있어? 어 오늘은 없어. 그냥 집에서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는 날도 있다. 나점복이 없는 날에 뭔가를 열중해서 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적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언젠가는 서큘레이터를 전부 분해해 닦았다. 어느 날은 탄 후라이팬을 장장 다섯시간에 걸쳐 닦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점복과 나는 한 공간에 있다. 나점복은 심지어 이번주는 하루도 출근하지 않았다. 나는 요새 하루종일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집 안에서라도 작업 공간을 따로 두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방에서 나와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 자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집중이 또 안됐다... 내가 집 외의 별도 작업 공간을 구하지 않는 한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일단 이건 내 문제인 것 같은데 사람의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영향을 받고 생산성 의지를 좀 잃는 것 같다… 또 같이 라서 향상된다기보다 뭔가 의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또 이상하게 신경쓰인다는 점에서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게 하는 마이너스 시너지가 있는듯… 뭔가 집안일을 한다거나 맞춰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점복이가 가끔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없으면 심심하긴 하다... 오늘도 집중이 잘 안돼서 쓰잘데기 없이 랩탑 컴퓨터를 열고 이런 쓰레기 글을 쓰고 있다. 키보드로 친다고 다 글이 되는 건 아닌데… 근데 오늘은 주말이니까 그냥 아무 글이나 쓴다. 미래의 내가 잘 고치고 있기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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