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부터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보수를 받는 노동도 하지 않는 소위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고 책을 한 권 작업하긴 했다. 쓰고 나니 이상한 말이네. 그런데 사람들한테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한다거나 놀거나 쉰다고 한다. 노동으로 인한 수입 활동이 없다면 보통 그렇게 말하니까. (요새 일 하세요? 라고 했을 때 그건 돈 받는 일을 뜻하니까.)
아무튼 이 <휴식기>는 순전히 나의 선택으로 인한 것으로 탄산씨 요새 뭐하고 살아요~ 안부를 물으면 <집에 그냥 있다>고 한다. 집에 있으니까 충실하게 사실을 반영했다. <그냥>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좀더 긍정적인 반응이 필요한 경우 <요새 그냥 잘 푹 쉬고 있어요> 라고 한다. 사실 거짓말이다. 머릿속은 아주 바쁘다. 내년이 되면 일을 시작해야지, 그런데 일을 시작하려면 이런 저런 준비가 필요하겠지? 그런데 또 일을 시작하면 못 노니까 이런저런 노는 일들도 지금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일을 시작하려면 푹 쉬기도 해야하고 몸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일한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것들은 했었나?
퇴사한지도 이제 딱 1년! 11년을 다닌 회사라 짐도 많았고 주변 정리 할 것도 많았고 일과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집으로 생활하는 공간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을 정비하는데만도 몇 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퇴사하고 나서는 빨리 독립 작업자로서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상반기는 쉴 틈 없이 바쁘게 보냈다. 바빴다고는 해도 출퇴근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절약되었기도 하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이다보니 <쉬면서 일하고 있다>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어쨌든 일을 하긴 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놀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빴던 기간의 보상 심리로 나 자신에게 관대하게 게으르게 보낼 수 있는 기간을 올해까지 늘렸다. 관대하다 게으르다 따위의 이런 말조차 어떤 스토익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쉬면서 느끼는 건 이런 생각이야말로 제일 휴식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무튼 스스로와 약속한 시간도 이제 한 달 반 정도가 남았다... 그런데 왜 쉬는 건 쉬어도 쉬어도 부족한 것 같은걸까? 프리랜서의 삶으로 진입해야한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그 시작을 유예하고만 싶어진다… 시간은 쏜살같이 빨리도 간다… 이 시기가 되니 사람들은 올해의 뭐시기와 내년을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 할 건 내년에 생각하면 안될까요... 왜케 미리 사는거에요! 한국인들 이제 그만 근면함을 멈추라고 하고 싶지만 나라고 딱히 한국인이 아닌건 아니어서 어떤 의미와 기억으로 남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 시간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기를... 이 휴식이 어떤 의미와 계기로 남아보기를... 아니어도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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