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의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오래 일했더니 드물게 직업 관련 특강이나 토크를 할 기회가 생겼다. 뭐... 그냥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면 된다. 쉽지는 않다. 그리고... 질문을 받아야 한다...
- 디자이너의 채용 공고는 주로 언제쯤 올라오고, 어느 곳에 올라오나요? 편집자 채용 공고는 출판사들의 SNS를 통해 자주 봤는데, 북디자이너는 본 적이 없어 궁금합니다! 따로 채용 시기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공석이 생기면 올라옵니다. 공석이 잘 안 생깁니다… 잘 안 올라옵니다… 좋아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먼저 문을 두드려보세요. sns에서 포트폴리오나 작업물을 올리고 외주 작업 형태로 경험을 쌓아나가거나 취업과 연계된 SBI 등의 출판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방법도 있습니다. 각 출판사 사이트 혹은 북에디터라는 사이트에 채용 공고가 올라오니 확인해보세요. - 출판사의 다양한 직종(편집자, 마케팅, 디자이너 등) 중에서 북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이런 북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이 있을까요?
딱히 출판사에 가려는 생각은 없었고 ... (어쩌고저쩌고) 부모님이 서점을 하셨고... 편집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과 이미지, 언어라는 재료에서 그걸 결합하고 정돈해 더 나은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고... 책은... 그래픽 디자인의 정수이며... (중략) 사실 운이 좋게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케이스입니다만... (후략)*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다. 당연하다... 나도 2009년에 잡지사나 출판사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신입을 뽑긴 하는 거냐고 글을 쓴적이 있다... 제일 궁금해 할 법한 질문이니 말하는 사람의 경험이 들어간 실질적인 도움이 될 법한 사례를 성의 있게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곤란하다. 남들은... 이랬더랩니다... 라며 밍숭맹숭하게 답할 수 밖에... 그렇다고 저는 이랬는데... 참고... 라도 하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면... (절대) 안 된다.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부터 하고 보자! 라기엔 출판사 직군의 벽은 단단하다. 특히 디자이너 신입은 자리 자체가 많지 않고 언제 뽑을지도 모르는 걸 내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느새 난 그 벽을 통과해있는 사람이었는데 회사 내부의 상황과 관리자의 어떤 의도가 결합된 흐름의 일부였을 거라는 짐작만 해본다. (아직 젊은 나이, 4년제 디자인과 졸업 등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막연히 추측해볼뿐) 언뜻보면 규칙대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 조직 생활이다...
부장님은 본문 디자인을 해보라며 희한한 얘기를 했다. 본문 조판 수정만 할 줄 알면 페이지당 작업비를 얼마를 받지만 본문 포맷 (레이아웃 디자인)을 할 줄 알면 단가가 껑충 뛴다. 요소가 많고 컬러가 들어간다면 단가는 더 오른다! 거기에다가 표지까지 작업한다면? 표지 작업비가 얼마 정도 되니까... 본문과 표지를 작업하면 책 한 권당 무려! 무려...! (얼마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외주 작업을 하더라도 꽤 쏠쏠한 금액이라는 말이었다. 이 분이 왜 이런 얘길 하지? 그것도 직속 상사가? 동기 부여를 이런 식으로도 하나? 지금 회사에서의 능력이나 평가에 대한 독려가 아니라 (외주 작업을 상정한) 돈... 얘기를 하다니? 상사로서가 아니라 선배 디자이너로 하는 이야기였을까? <돈>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일의 본질이기도 하니까? 내가 돈에 관심이 많아 보였나? 이것도 미스터리의 일부다...
부장님은 내가 본 상사 중에 제일 스윗...한 편이었다. 필요한 부분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특히 연차가 어린 직원에게 다정하게 이것저것을 알려주려고 하셨던듯... 뭔가가 아니다 싶으면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하셨고 따가운 말이나 직언은 되도록 안하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본인이 그런 말을 잘 못하기도 하고... 남들 시선을 많이 의식했던듯... 언젠가는 뒷표지 문안을 2단 구성으로 했는데, 바꾸라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보기에 2단이 복잡해보인다 라고 말하는 편이었다. 애매한 디자인을 보면 음... 난 잘 모르겠어... 라고 하셨다. (시간이 많이 흐르게 되자 왜 몰라요! 그냥 말씀을 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며 부장님의 스윗함은 당의정...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 선배들은 업무량이 많아 감리는 주로 편집자가 갈 정도였고 부장님도 원래는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라 뭘 가르쳐주고 봐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우리동네 미술부는 다른 출판사에 비해서도 업무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했다. 다른 데를 안 다녀봐서 모르지만... 건너 듣기로 한 달에 한 권 정도 그것도 표지만 작업한다고 들은 적이 있으니, 비교해보면 훨씬 많긴 했다.
미술부는 디자인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조직 구성이나 업무 분배 시스템 등이 바뀌며 각 디자이너가 하는 일도 본문 디자인만 하는 사람이 표지도 함께 한다던가,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처럼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한동안 디자이너는 표지/본문 디자인으로 업무가 확실하게 나뉘었었고, 본문은 조판자와 디자이너로 나뉘었다. 그 경계는 확실했다. 그런데 나는 조판 작업자 일과 본문/표지 디자인 일을 병행하는 시간이 꽤 길었고, 나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왜 나는 이것저것을 다 하면서 야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맡고 있는 본문 수정을 마치면 남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본문 레이아웃 포맷을 작업하고 표지 시안을 이것저것 또 잔뜩 벌려놓게 되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무슨 일을 받게 될지도 예상이 안됐다. 그렇다고 해도 디자인 회사에 있던 것 보다 많이 일하진 않았고, 남의 회사 일이 아니라 다니는 회사의 일을 한다는 게 좋았다. 일을 인계받아 하는 경우에도 작업자라면 크레딧을 꼭 넣어주었다. 아 근데 너무 졸리다. 나머지 좋은 점 쓰고 뭘 또 써야 하냐면 10년 정도 일 개 많이 했다 그리고 조직 개편 이후로 좢같아 진 것 그런데 그 시점을 계기로 또 사람들이 날 디자이너로 봐주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맺어야것지? 너무 졸려서 정리는 나중에 하겠다...
<아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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