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어

mutansan 2024. 11. 26. 23:24

1차 시안이라는 말은 나의 발작 버튼이다. 어디 한 번 달라고 해보십시오. <1차 시안>. 

초반 몇 년간은 드러내놓고 불쾌감을 표현했고 경력이 좀 쌓인 후로는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그 말을 들으면 예민하게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1차… 시안요?” 이어서 농담을 던질 만한 사이라면 "몇 차까지 받으실건데요?" 라고 하고 그런 사이가 아니면 '님도 표지 문안이나 보도자료 1차 2차 3차 시안으로 작성하나요?'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편집자 얼굴에 앗차 하는 표정이 순간 스치고 그게(?)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이라도 듣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일단 허허 웃어본다. 그리고 “그 말은 좀 곤란한 기분이 드네요... 선배나 상사가 1차 시안이라는 말을 자주 쓰셨나봐요…” 라고 말한다... 치졸한가? 수동성 공격조로 말하지 않고 보살처럼 그저 웃기만 하면 좋겠지만 아예 못 들은 것처럼 지나칠 수는 없다. 1차 시안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쓸데없는 신념 때문이다… 그게… 그렇지 않나? 1차 시안을 받겠다는 거면 몇 차까지 받는다는 거지? 그리고 1차면 대충해도 되는 건가? 

1차 시안이 <초안>과 통하는 뜻으로 쓰인다면 당연히 자연스럽다. 어느 정도 방향 설정을 한 디자인 시안을 확인한 후 좁혀서 2차 시안에서 좀더 날카롭게 다듬어서 마무리 한다는 프로세스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굳이 나도 이렇게 미친 놈처럼 굴 이유가 없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방향 설정 정도의 디자인 작업 진행률은 그 기준이 없다. 방향 설정 차원의 이야기는 참고 시각 자료와 충분한 대화 소통으로도 가능하다. 완성되지 않은 시안을 가지고 편집자와 할 수 있는 얘기도 별로 없다. 그도 그럴게 나도 작업하면서 이게 어떻게 끝날지 모를 때가 있다… 중요한 건 미완성작을 결정권자에게 가져갈 수 없다… 우리(회사)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며 뻔히 1차/2차를 나누는 기준은 확정(컨펌)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전제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런 상황에서 <1차 시안>이라는 말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결국은 재시안을 할 수 있는 일정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고, 1차 시안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 좀더 빨리 시안을 받아보고자 하는 의도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이 든다. 7일 작업해야 하는 시안을 4일 후에 1차 시안을 받자고 하면 7일 작업한 것보다 4일 작업한 시안이 통과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실제로 몇 번 이렇게 이야기한 적도 있다) 일을 대체 왜 이렇게 해야하는 걸까? 편집자의 마음은 이해한다... 출간 일정은 정해져 있고 엄수하려면 협업자에게 방어적이고 대비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나는 누가 이해해주나… 다음이 전제된 그 단어에서 나에 대한 의심과… 담당자의 능력 부족을 느낀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일을 덜 할 생각을 해야지 왜 초장부터 일을 더 많이 할 생각부터 하냐구요… 그러니까 누가 <1차 시안>이라는 말을 쓰랬냐구요… (그렇다고 내가 그 말을 한 담당자를 미워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꽤 많은 수의 편집자와 일했지만 이제껏 미워한 담당 편집자는 한두 명도 될까 말까다… 정말이다. 나는 편집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시안 작업을 왜 하는가?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를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걸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야속한 마음과… 버려지는 노동을 디폴트로 생각하는 그 무심함과 정신 머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면 역시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인건가… 그런데 나는 하나 하나 만들면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안해도 되는 생각과 걱정과 수많은 필터를 거친 것들이라고… 그래! 또 해야 된다면 할 수는 있지! 컨펌 안 됐다고 하면 나도 순응한다. 그렇게 꽉 막히진 않았다고! 그러나… 구성원으로서 협업자로서 애당초 그걸 전제하는 것이 너무나도… 슬픈 것이다…! 

<1차 시안>이라는 말에 발작하는 이유는 또 있다. 기분파 대표가 있는 경우, 사공이 많은 경우, 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시안을 다시 해야 했고 나야말로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재시안을 하면 어떡하지라는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디자인 확정이 되는 것이 거의 눈가리개 하고 활 쏴서 과녘을 맞춰보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개는 가지 않은 길을 새로 내는 듯한 기분이다. 가볼 법한 갈래길들을 여럿 내보고 그 길을 내가며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어떤 길에는 한계가 보여서 다른 쪽에 아름답고 가기 쉬운 길도 있는데요 라고 해보기도 하고 안 가봤으니까 모르지 않나요?라는 대답을 듣기도 하며 그래서 원하는 길로 안내했더니 아… 아니었네요. 라는 대답을 들을 때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담당 편집자의 방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원고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담당자가 원하는 것 하고 내 마음에도 들게 하는 게 우리가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과정이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는 보통* 하나의 길 밖에 못 가니까 후회 없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길을 내보기도 한다.

그러던 중 나는 책이 나오고 나서 남탓을 하지 않거나 후회하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불만스럽거나 부끄럽지 않으려면, 언제부턴가 뭐가 되어도 아쉽지 않은 시안만 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위 끼워 넣기라고 말하는 더미 시안은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건 결벽이라기보다는… 의심 많은 겁쟁이가 내린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이게 구린 건 보여줘봐야 알겠지? 일단 해보자 했는데 이게 좋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근거 있는 공포)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었지만(: 추가 시안을 요청 받는다...) 그래도 근 몇 년간은 그 목표에 가깝게 작업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래서 디자이너님은 뭐가 제일 좋으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뭐가 되어도 좋은데요. 다 좋은 것만 준겁니다… 라고 했고… 그덕에 잘난 척한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말 <1차 시안>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로 거의 재시안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꼭 그 이유가 아니라 그밖의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결과였겠지만… 

<1차 시안>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내가 한 노력은 다음과 같다. 특히 표지 시안 작업에 시간을 상당히 많이 소요하므로, 일단 시간을 주는 데까지는 주셨으면 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혹시나 컨펌이 나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일중 그 건을 최우선으로 해서 출간 일정을 무조건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나름 편집자들과 열심히 소통했으며…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시안을 작업했고… 전달할 때는 변변치 않은 언변으로 각 시안 설명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혹시 원한다면 이런저런 배리에이션이 가능하다고 보여주었다… 대표님 방에 들어갈 때는 웬만하면 나를 불러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을 합치면 시안 몇 번 한 것과 같은 노동량이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 

어느덧 포용하고 수용해야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1차 시안>이라는 말은 변함없이 여전히 싫다는 얘기를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길게 할 것인가 싶긴 한데... 싫은 건 싫은거고... 다른 디자이너들은 별 생각 없던데? 라고 하면 또 딱히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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