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마티, 2018년)>는 푸투라(futura) 서체의 매력과 그 쓰임처를 두루 알 수 있는, 찬사에 가까운 책이지만 이 글은 그런 내용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며 단연 기대했던 수업은 타이포그라피였다. 수강신청부터 설렘과 들뜸으로 가득했던 기분이 생생하다. 타.이.포.그.라.피.1. 발음도 멋지고 전문적인 (간지가 좔좔 흐르는) 이런 대박적으로 멋진 것(어휘 빈곤...)을 정식으로 배우게 되다니... 대표적인 라틴 서체 10종을 배우며 방안지와 미농지에 라틴 문자의 곡선과 직선을 따라 그리는 시간은 <진정한> 디자인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수업 최종 과제로 서체의 매력을 드러내는 포스터를 만들 때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고전 스타일, 모던 스타일, 세리프와 산세리프로 나뉜 서체들은 바라볼수록 고유한 아름다움을 뽐냈고 나는 그것들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사용하며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실감했다. 요새도 그런 식의 따라 그리는 수업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그것만으로 디자인 뽕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시절 탓인지 교육 과정 탓인지 학교 탓인지 한글 서체에 대한 교육은 부재했고, 라틴 서체를 잘 써야 진정한? 디자이너다 라는 의식이 기저에 있던 건 아니었는지 돌이켜보면 그것이 참 아쉽게 느껴지긴 한다...) 그렇게 만난 여러 라틴 서체들 중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들은 헬베티카, 보도니, 프루티거, 푸투라… 단순함, 우아함, 시인성, 기하학적 조형미 등 추구하는 특징이 극대화된 서체들이었다. 또 각각의 활자 모양이 예쁘기도 했다. 작업물과 결이 맞는다면 서체만으로도 지배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으며 자간을 자유롭게 설정하는 등 어떻게 공간을 사용해도 이상해보이지 않았다. 또 보는 사람들 눈에도 익숙하고 무난해 어색함 없이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도 손이 자주 갔던 것 같다.
그리고... 길 산스(Gill Sans)가 있다.
디자인 전공 학생이라면 익숙한 필수 서체 중 하나지만 막상 쓰게 된 것은 본격적으로 디자인 실무를 하게 된 이후였다. 그전까지 길 산스는 내게 세리프도 산세리프도 아닌 어정쩡한 인상으로 다가왔고 몇몇 글자는 예쁘다기보다는 정말 희한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자간이나 공간이 조금만 어그러져도 못생겨보였다. 글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비균질함 덕에 두루 쓰기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서체도 아니었다. 경력이 부족하고 미숙한 시절이어서였는지 서체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사용하기 까다롭다는 느낌이었다. 당시 지금보다 다양하지 않았던 한글 고딕 서체의 풀 안에서 굳이 짝지어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인터넷에 <길 산스는 에릭 길만이 잘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고... 반발심 내지 호기심이 든 나는 (나는 디자이너다 나는 모든 서체를 지배한다 좋은 요리사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길 산스를 서슴치 않고 써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돼 이 서체의 매력에 빠져 금세 좋아하게 되었다. 쓰려고 하다보면 좋아지는 것들이 있는데 길 산스가 그랬다.
조형적으로는 당대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서체라고 평가받으며 디자인 전공 수업에서는 라틴 서체를 배우게 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말그대로 교과서적 위상을 지닌 서체.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대표하는 서체로 책 표지를 디자인할 때 관련 저자나 현지 분위기를 낼 때 쓰려면 그것보다 제격인게 없었다. 이 서체가 왜 영국적이냐면... 런던 풍경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익숙하고 지배적인 인상을 만드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실제로 기차역과 지하철역 안내 서체로 눈에 닳도록 볼 수 있는 등 지금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펭귄클래식의 표지라던가 BBC 로고와 그 방송 프로그램에 전용 서체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며 (런던 지하철 간판이나 펭귄클래식 표지가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은 못봤다) ... 특히 나는 20세기 런던 교통국 빈티지 포스터 스타일에 환장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더더욱 안 쓸 이유가 없었다...
부리가 없는 서체를 산세리프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산세리프 서체인 헬베티카나 유니버스는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무난한 인상을 지니고 있고 어디에나 잘 어울리지만 표정이 없는 공무원 같기도 하다. 그에 반해 길 산스는 공무원이긴 한데, 진중하게 업무를 처리할 것 같다가도 내가 잠깐 안 볼 때 찡긋거리는 표정을 지을 것만 같다... 지친 출퇴근길에 뜻밖의 감성 멘트로 안내 방송을 할 것 같은 지하철 기관사 같은 느낌이랄까... (보통 디자인 서적에서는 산세리프의 모던한 틀을 지니면서도 세리프 서체의 모양이나 비례 등의 특징을 가져와서 둘의 장점을 다 취했다라고 설명되는 내용이다...) 어쨌든 내게는 까다롭고 희한하게 생겼다는 인상에서 간결하고 실용적이면서도 위트있다는 인상으로 바뀌어 자주 손이 가는 서체가 되었다. 다양한 웨이트를 지니고 있어서 다른 영문 서체와 짝지어줄 수고없이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작업물의 분위기를 통일성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도 좋았다. 만들어진 시기에는 실용성이 돋보이는 새로운 서체였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쓰인 곳들의 권위와 문화적 맥락이 더해지며 격조있다는 느낌까지 더해져 인문교양서나 논픽션 표지에 대어봐도 잘 어울렸다. 표지에 디자인 요소로 길 산스가 쓰였을 경우 대지 문안에 쓰이는 본문(body text)에도 당연히 길 산스를 썼는데, 한글 고딕과 섞어짜기를 했을 때 살짝 드러나는 (그전에는 거슬렸던) 특유의 불균질함이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전보다 내가 서체를 더 잘 다루게 됐다는 이유도 있을 수 있다...) 포스터나 표지 등에 크게 썼을 때는 레트로 스타일의 빈티지 느낌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었고 반대로 어떤 식으로 디자인하냐에 따라 모던한 인상을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길 산스는... 에릭 길이 만들었다.
에릭 길은 어떤 인간인가? 그는 탁월한 조각가이자 공예가였고 권위 있고 두루 쓰이는 서체들을 만든 훌륭한 서체 제작자로 국가 유산급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한편으로는 그 내용을 알아보기도 싫은 근친상간, 아동 성학대, 동물 학대 등의 중범죄를 저질렀고... 본인에게 그것은 일종의 실험...이었기에 수기에 그런 범죄 행각에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남기기까지 했다... 그런 사실은 한동안 드러나지 않아서 그는 20세기 내내 탁월한 디자이너이자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가 20세기 말 전기 작가에 의해 이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고 하며... 영국에서는 그가 만든 조각에 반달리즘이 일어나고 관련 전시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에릭 길의 작품 퇴출 논쟁이 불붙는 등 길 산스를 사용하는 기업에 불매 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세이브더칠드런은 로고 서체를 바꿨다. 고 한다...
<길 산스 아직도 쓰는 사람 있음?> <에릭 길은 성범죄자>라는 트윗을 본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궁금했던 나는 황급히 검색을 했으며... 곧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심지어 국내에는 관련해 쓰여진 글도 별로 없어서 외국 뉴스 사이트를 번역해가며 보았다. 내용도 그랬지만 아무리 영어 사용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사실이 밝혀진지 제법 되었는데도 그런 정보를 전혀 몰랐다는 것도 또 충격이었다.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던거야? 너무 일만 했나?; 충격에 이어 신나게 길 산스를 선택해 시안을 만들고 표지로 나온 책들을 떠올리며...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아 몰랐지만 나중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지 속에 어떤 형상이 나타나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깨달음은 공포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글 사용자의 비애와... 인터넷 하지 말걸 하는 생각과... 누구인지에게 모를 심한 배신감도 느꼈다... 요새 디자인 대학에서는 길 산스를 가르치며 에릭 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언급할까? 에 대한 것도 궁금해졌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다가왔던 윤리 문제는 처음이었다. 누구도 대신 결정해줄 수 없고 답도 없었다... 예술가의 생산물인 음악이나 미술, 혹은 영화나 드라마 등의 작품인 경우 소비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디자이너로써 서체를 사용하는 것은 그런 소비와는 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또 서체 자체는 언뜻 그의 만행과는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고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많이 얽힌채로 시간이 지나 이미 그와는 독립적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릭 길은 개만도 못한 새끼지만 에릭 길은 이미 죽었고, 서체를 사용한다고 해서 에릭 길한테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에릭 길과 길 산스는 별개로 봐야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품과 창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다 지워야 한다면 얼마나 삭막해질지 상상해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제작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서체는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야하나? (이러면 내 마음은 편함) 아니면 내 마음이 편하려고 창작자와 창작물은 별개라고 생각하게 되는걸까?
그렇다해도 이제는 길 산스를 보면 에릭 길의 범죄를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웠고, 아무 생각없이 길 산스가 조형적 형태가 어울린다는 이유로 선택할 수는 없게 됐다. 세이브더칠드런도 당연히 로고 서체를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체가 어떤 용도로 개발되었는가, 어떤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는가도 디자이너 입장에서 그 서체를 선택하는 고려 요소가 될 때가 있고 나도 실제로 그런 이유로 선택했던 서체가 있었으니까. 차라리 길 산스를 봤을 때 에릭 길이 떠오르지 않던 시절을 그리워 해야하는 걸까? 그렇다고 계속 모르는게 좋았을 것 같지도 않고 몰랐다는 이유로 용서될 것 같지도 않다. 모르고 길 산스를 사용한 작업이 가족/아동/여성/동물 관련 책이었다면 그것보다 끔찍한 일이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모르는데 누구는 그걸 아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일도 없다...
그래서 길 산스 평생 안 쓰기로 맹세할 수 있어? 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이제는 길 산스를 사용하는 빈도를 대체로 줄이려고는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길 산스를 아예 배제하진 못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써야겠지만… 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을 때라는 게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길 산스가 포함된 수많은 서체들을 주루룩 늘어놓고 이걸 지우니 마니 하면서 계속 고민하겠지... 그놈의 다양한 웨이트... 컨덴스드 와이드 종류도 존나 많아가지고… 그걸 전부 못 쓰게 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아깝다는 마음도 들고 더 솔직한 마음으로는 비난받을 건덕지를 만들기 싫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만행에 또 욕이 나온다... 휴 하여튼 개만도 못한 놈의 새끼...
아무튼 시간이 지나 어떤 식으로 내 작업물이 남겨질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조형을 택할 것인가? 의미를 택할 것인가?) 어떤 것이 최선일지 매번 열심히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또 이런 주제에 대한 결론은 결국 선택과 책임은 개인의 자유이되, 비난받을 만한 소지가 있다는 것은 주지해라~ 라며 밍숭맹숭하게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작품과 사람을 분리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아니면 개별적인 문제에 따라 달라질지 어떨지는 충분히 긴 시간이 흐르면 분명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고 그래서 나는 굳이 또 이런 얘기를 이렇게 길게 좔좔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이 쓸데없이 긴 글은 당연히 길 산스를 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언급했듯 길 산스를 종종 썼다... 특히 인문서에... 그러나 도저히 <진실과 회복>*이라는 책에는 차마 쓸 수 없었고, 일부 시안에 필요한 경우 대체할 수 있는 서체를 찾았다. 길 산스는 존스턴이 제작한 서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체이니, 다른 대체 서체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도비 폰트 사용자라면 quasimoda나 P22 Underground를 사용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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